Homily – 주님의 뜻을 간구하십시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도 이 걸음을 옮겨갈 때, 제 영혼에 간직된 기도는 어떤 것이었는가 돌아봅니다. 간절한 바람으로 이루고자 하는 청원은 어디에 뿌리를 두는가 하고 말이지요.
오늘 우리는 요한 1서 5장 14절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기도는 어떻게 성취되는 걸까요?! 기도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자비와 은총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찾아 겸손하게 탐구하고 간청해야 하지요. 식별된 은총과 주님께서 맺어주신 열매에 대해 깊은 감사도 돌려드려야 합니다.
어느 작가는 자신의 글에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님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다면 그는 안전했을 거야. … 그런데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했고,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많이 편들었어.”라고 술회한 적이 있습니다. 대주교님도 당신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저를 믿으십시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들과 같은 운명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지요.
저 역시 삶을 걸어오면서 겪은 가장 깊은 갈등과 갈증이 있다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택하여 응답한 길이었으나, 그들에게 진정으로 주어야 하고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저 배불리는 빵을 내어주거나 외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자족(自足) 하는 위선을 원치 않습니다.
상처받은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으로 다가서는 것, 가슴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로 교감하며 영혼을 비추는 것, 살아계신 하느님의 현존을 일깨워주고, 그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심어드리는 삶이 되는 것이 간절한 기도였고 이루고 싶은 꿈의 전부였지요. 그렇게, ‘영혼의 치유자’이신 주님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자 하는 때 묻지 않은 바람을, 채우고 성숙시켜 가야 할 ‘영성(靈性)’이라 부릅니다. 또한 그것이 주님께 봉헌된 이유이며 이 길에 응답한 지향이지요.
요한 1서 5장 20절에서,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알도록 이끌어 주신 모든 것이 이미 축복입니다. 참 하느님,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만이 저의 몫입니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3장 27절에서,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라고 하였지요.
그렇게 주님을 전하는, ‘바람’ 같은 삶의 여정, 그 순간순간에 만나는 이들의 가난함을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도록, 님을 따라 언제나 ‘떠날 수 있는’ 여정이기를 기도합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는 요한복음 3장 30절의 말씀 그대로 말입니다.
주님, 저희의 바람이 당신의 뜻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당신의 뜻이 저희의 기도가 되게 하소서. 당신께서 허락해 주신 삶을 통해, 기울어져 가는 이 세상 가운데서도, 신실(信實)하신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친히 저희 발걸음을 이끌어 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