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아침이면 쌀쌀하기 그지없는 바람이 부는데도, 어찌 추위와이른 아침의 고단함을 마다하고 이 성당에 찾아와 깃드십니까?! 때로는 고단하고 무거운 발걸음일 텐데도, 무엇을 찾아 하루도 빠짐없이 주님 제대 앞에 모여드십니까?!
아마 여러분 마음 깊은 곳에 깃든 간절한 기도나 믿음, 주님께만 기대고 열어놓을 수 있는 희망에 대한 열정이 이곳으로 이끌고 계시겠지요. 저 역시 미천한 사제에 지나지 않으나, 나약한 저의 기도를 통해서도 이미 여러분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용기를 북돋아 주시고, 믿음을 더하여 주시고, 따뜻한 치유의 손길로 감싸 주시어 여러분의 발걸음이 평화로 충만해지기를 온전히 의탁합니다.
이사야서 25장 8절, 9절에서,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라고 일러줍니다.
이 세상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각자, 곧 ‘나’의 눈물을 이해하고 부끄러움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지요?! 이성적(理性的)으로 ‘이해한다!’라고 하는 거리감 있는 말마디가 아니라, 가슴에 패인 상처와 고통을 전심(全心)으로 받아들여 함께 아파해 줄 수 있는 동행의 온기(溫氣)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요?!
바깥의 이들에게는 모두 다르지 않아 보여도, 양을 사랑하는 목자는, 양 한 마리, 한 마리의 생김과 습관까지 다 꿰뚫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기억의 선명함과 크기는 사랑의 깊이에 비례하는 법’이니까요.
‘가슴 저린 연민(憐愍)’은 맑고 깊은 우물처럼 마르지 않는 사랑에서 흘러나옵니다. 고통스러운 번민을 머금은 눈물의 체험과, 지난 설움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여들을 통해 여과되어, 투명하리만큼 정제된 삶 자체를 끌어안은 사람만이 내어줄 수 있는 은총입니다.
우리가 기념하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며, 자신의 생을 던져 선교에 열정을 쏟을 수 있었던 것도, 세상 곳곳에서 영혼의 샘을 목말라하고, 삶의 의미를 회복하며 구원에로 옮아가길 청하는 가난한 이들을 찾아나서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마태오복음 15장 32절에서 “저 군중이 가엾구나.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곁에 모여든 이들의 간절함을 굽어보시고 연민으로 가득 차셨던 것이지요. 치유의 갈망, 관계의 회복, 부끄러움으로부터 해방, 자유에 대한 염원 등 저마다 영혼에 짊어지고 온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위로해 주고픈 사랑이 당신의 영혼을 울리셨던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신 이유입니다. 우리가 당신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곁에서 위로와 평화를 얻어 생기(生氣)를 회복하도록 말입니다. 바로 그 군중의 모습이 여기 모인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주님께 빌어 얻고자 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과 성사를 통해 놀라운 일을 반드시 이루어주십니다. 눈물을 닦아내어 주시고, 슬픔을 치워 주시도록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신 성탄의 신비가 바로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주님 당신의 모습을 닮아 우리 자신을 치유의 도구로 내어 드리도록 초대받는 오늘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