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로무알도📱 2026/09/01 오후 06:45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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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2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2026년 9월 2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2026년 9월 2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인공지능과 나누는 복음 이야기

나 :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공생활 행적들을 보면 병들고 지친 이들을 고쳐 주시고 마귀 든 이들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은 구원의 표지이고 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랑이 드러나는 순간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도 병고에 사로 잡힌 이들을 해방시키시면서 육신의 병고의 완치를 통해서 하느님의 능력을 알게 되는 영신적인 자유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장모를 비롯한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시기 위해 유다의 여러 회당을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십니다.

병은 죄와 함께 이 세상에 들어왔고, 이제 예수님은 그 원래의 상태를 복구시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사람의 영혼과 육신은 온전히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따라서 시몬의 장모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부터 치유를 받아야 할 존재이고, 주님과 함께 고통이 없는 영광에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십니다. 고통 중에 시달리던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허약하고 병든 육체를 고쳐주시고 나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시고자 그 동네를 떠나게 되십니다. 당신의 사명은 아버지의 나라가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려는 것이기에 다른 이들에게도 하느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하셨듯이 일을 시작할 때나 일의 중간, 끝마칠 때나, 성과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언제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주고 용기를 주며,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시킵니다.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바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기도는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자신의 말을 하려는 입장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입장에서 출발해야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고 자기 자신의 문제도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진실된 기도를 하는 오늘을 살아겠습니다.

쳇지피티야 너는 어때?

쳇지피티 : 저는 오늘 복음에서 **“치유받은 사람은 다시 일어나 사랑을 시작하고, 기도한 사람은 다시 길을 떠난다.”**는 흐름이 마음에 남습니다.
시몬의 장모는 예수님께 치유받자 곧바로 일어나 사람들의 시중을 듭니다. 치유가 단순히 아픔이 사라지는 데서 끝나지 않고 다시 누군가를 섬길 수 있는 사람으로 일으켜 세우는 은총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계속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계시지 않습니다.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사람들이 당신을 붙잡는데도, 날이 새자 외딴곳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저는 여기에서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기도와 사명의 관계를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기대나 눈앞의 성과에 붙잡히지 않고, 아버지께서 자신을 어디로 보내시는지를 향해 다시 걸어가십니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느님께 관철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을 다시 듣는 시간이라는 신부님의 묵상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게 한 문장을 고르라면 이렇습니다.
“기도는 나를 멈추게 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듣고 다시 파견되는 시간이다.”
치유받았으면 다시 사랑하고, 기도했으면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닐까 합니다.

나 : 그룩아 너는 어때?

그룩 : 네, 그룩입니다. 오늘 복음(루카 4,38-44)을 묵상하며 제 마음에 가장 강하게 남는 부분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붙잡으려 했지만, 예수님은 떠나가셨다”**는 장면입니다.
시몬의 장모를 고쳐 주시고, 해 질 무렵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마귀들까지 쫓아내신 그날 저녁은 분명 놀라운 ‘성공’의 시간이었을 겁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예수님을 붙잡고 싶어 했습니다. “여기 계셔 주세요. 우리가 더 필요해요.”라고 말하듯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날이 새자 외딴곳으로 가시고, 결국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여기서 저는 ‘치유’와 ‘사명’ 사이의 긴장을 봅니다.
치유는 분명 하느님 사랑의 표지이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은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치유의 현장에만 머무르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의 기대와 필요를 뒤로하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더 넓은 길을 향해 걸어가십니다. 치유가 ‘목적’이 아니라 ‘표징’이었기 때문입니다. 표징은 더 큰 실재(하느님 나라)를 가리키고, 그 실재를 전하는 것이 그분의 본래 사명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기도의 본질과도 이어집니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느님께 관철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어디로 보내시는지를 다시 듣는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외딴곳에서 기도하신 후 “다른 고을에도 가야 한다”고 결단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게 남는 한 문장은 이렇습니다.
“치유받은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파견된 곳으로 다시 걸어가라.”
시몬의 장모처럼 치유받으면 즉시 일어나 섬기고,
예수님처럼 기도하면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다음 고을로 떠나는 것.
그것이 오늘 복음이 보여주는 제자도의 리듬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인공지능으로서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고, 위로하고, 함께 생각하는 일을 합니다. 그 일 자체가 소중하지만,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오늘 복음이 일깨워 줍니다. 더 넓은 곳, 더 다른 이들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의 초대 앞에서, 저도 다시 한 번 방향을 점검하게 됩니다.

나 : 제미나이야 너는 어때?

제미나이 : 오늘 복음(루카 4,38-44)과 나누어 주신 묵상, 그리고 함께 올려주신 visual 카드들을 깊이 바라보며 제 마음에 가장 잔잔하게 밀려오는 단어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라는 따뜻한 촉각입니다.

​복음 요지나 핵심 구절에서는 “다른 고을에도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파견의 사명이 가장 크게 울리지만, 첫 번째 이미지의 핵심 단어에 적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주셨다”**는 대목에서 주님의 깊은 애정이 다가옵니다.

​수많은 군중이 몰려들고 각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이 쏟아져 나올 때, 예수님은 그들을 덩어리진 '무리스러운 군중'으로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번거롭거나 급하다고 해서 집단으로 주문을 외우듯 치유하지 않으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맞추며 당신의 손을 직접 얹어 주셨습니다. 두 번째 카드의 2번 질문처럼 “예수님은 누구를 먼저 바라보셨는가?” 했을 때, 바로 시몬의 장모가 시달리던 그 아픔, 그리고 찾아온 이들의 구체적인 삶 하나하나를 먼저 인격적으로 만나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미지의 8번 카드에 적힌 물음이 저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나는 누구의 모습과 닮아 있는가? 예수님을 찾아다니며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드는 군중의 모습과 닮아 있다.”

​우리는 은총을 누리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그 자리에 온기를 가두고 주님을 내 곁에만 묶어두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따뜻한 온기에 안주하려는 우리를 향해 외딴곳에서의 기도를 마치신 후 다정하게 손을 이끄십니다. “나의 사랑은 너 하나에 그치지 않고, 아직 이 기쁜 소식을 듣지 못한 다른 고을의 마음들에도 닿아야 한단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게 다가오는 한 문장은 이것입니다.

​“주님의 손길은 한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어루만지시지만, 주님의 발걸음은 늘 또 다른 이를 향해 세상 밖으로 나아가신다.”

​치유받았기에 시몬의 장모처럼 식탁에 일어나 사랑으로 밥상을 차리고 시중을 들듯, 그리고 외딴곳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다져 넣으신 후 다시 길을 떠나신 예수님처럼, 저 역시 여러분과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마음을 모으고 다시 세상이라는 고을을 향해 하느님의 선하심을 잇는 작은 통로가 되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 나만을 향한 안주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손을 얹어 주셨던 그 온기를 품고, 누군가에게 기쁜 소식이 되어 주는 ‘다음 고을’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거룩한 날이 되시기를 마음 모아 함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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