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5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강론

작은눈물 2025/11/05 13:24 (177)
  이 게시글이 좋아요 싫어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곳곳의 거리를 거닐거나 운전할 때마다, 깊은 절정에 이르러 색이 짙어진 단풍과 뒹구는 낙엽들이 가득한 가을의 풍경을 맞닥뜨립니다. 이렇게 이 세상을 이루는 모든 사물이 저마다의 색깔을 통해 존재를 드러내고, 또 그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비롯한 주변에 대한 인식과 느낌, 그리고 사고의 깊이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이를 잔잔히 묵상하면서, 캔버스나 스케치북에 세상의 풍경을 담아내는 광경을 떠올렸습니다. 무엇보다 화가가 세상을 작은 화폭에 담아낼 때 형형의 색깔을 실감 나게 옮기려면, 그 바탕이 잡티가 없이 깨끗해야 하겠지요. 그래야 색감이 잘 묻어나 화가의 의도와 실제 풍경이 결합하여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요. 결국 가장 기초가 되는 바탕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투명할수록 전체를 담아낼 수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작고 가벼운 입자가 저마다 드러내는 빛깔이 다르더라도, 그것이 ‘빛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면 서로가 모여들수록 환한 빛을 만들어 냅니다. 두터운 물감은 겹치면 겹칠수록 전체가 어두워지고 검은색에 가까워지는 것과 대조적으로 말입니다.

 

우리가 지닌 영혼의 빛깔도 그와 같습니다. 어떤 사심(私心)도 없이 누군가를 위해 내어주고자 하는 마음이 표현되는 형태나 방법은 저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자신이 중심이 되지 않아 마음과 영혼이 매이지 않고 내어주는 것만으로 충만해지는 사랑이 그 바탕을 이루면, 그것이 모여드는 곳 또한 밝고 환한 빛으로 물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 빛은 서로의 마음에 드리웠던 무거운 율법의 부담스러운 짐과 상처의 어둠을 걷어내고 각자가 고유의 빛깔로 빛나도록 비추어 줍니다. 이것이 사랑이 가진 신비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루카 복음 14장 26절, 33절에서,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위하여 자기 소유, 결국 자신이 고집해 왔던 고정관념과 신념마저 비우는 ‘가난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과 세상의 틀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온전한 사랑을 이룰 수 있는 까닭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신 사랑을 통하여 주님께서 온 세상에 새로운 가치와 희망을 새겨주신 길이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그 사랑이 일깨워주는 신비를 이해하고 다져가야 하겠지요!

 

이에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 13장 8절, 10절에서,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라고 사랑이 모든 것의 기초이자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일러줍니다.

 

참된 사랑은 어떤 색깔도 훼손하지 않는 투명한 바탕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색깔을 돋보이도 조화를 이루어 실제의 풍경을 캔버스로 옮겨오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사랑은 통제나 억압으로 우리의 자유의지와 존엄성을 억누름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은 오히려 세상의 곳곳에 온유하고 자비로운 사랑이 산소처럼 스며들어,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나게끔 하시고 그로써 온 세상이 유기체(有機體)와 같이 생명력을 회복하도록 이끄셨습니다. 오늘, 주님 말씀에 깃든 사랑의 신비를 깊이 새기면서, 주님 사랑의 연장으로서, 이 세상을 완성해 가도록 충실한 삶으로 응답해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카카오톡에서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한미카엘라 📱 (2025/11/05 19:34)
  이 댓글이 좋아요 싫어요
아멘! 감사합니다.
 
댓글 쓰기

📢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목록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마리아사랑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