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과학에 대한 이해

김진희 모니카 2018/04/14 오전 01:22 (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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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현대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야기와 과학적 상식을 벗어난 표현이 많이 나온다.

과거에는 성경의 무류성을 문자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성경의 모든 기록을 글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과학의 발전과 과학적 논리는 성경에 대한 믿음을 흔들어 놓았다.

오늘날에도 성경과 과학에 대한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성경 공부를 계속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본격적인 성경 입문을 시작하기 전에 비과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성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창세기 첫 장에는 하느님이 엿새 동안 온 우주를 창조하신 이야기가 나온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우주가 생성되는 과정만도 수억 년이 걸렸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수십억 년 전에 형성

되었다고 한다.

또한 최초의 인류라고 알려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몇백만 년 전에 출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생김새는 우리와 많이 다르다.

하지만 세상 창조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 틀렸다거나 우리에게 거짓을 가르친다고 단정하는 것은

창세기 첫 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천문학자나 다른 학문의 스승으로서 말씀을 건네지 않으셨다.

하느님은 과학적 지식이나 대자연을 지배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인간에게 맡기고는 당신이

선물하신 지성과 능력으로 연구하고 파악하게 하셨다.(창세 1,28참조)

하느님은 그런 분야와 관련하여 인간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으셨다.

하느님은 우리를 과학자로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친구로 삼고자 하셨다.

성경의 첫 장은 우주의 형성 시기와 과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다.

창세기 첫 장은 무엇보다도 창조주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기리는 찬미가다.

성경 저자는 피조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면밀히 관찰하고는 이 모든 것이 역사 안에서

이스라엘이 만나고 체험한 하느님께 기원을 두고 있다고 선언했다.

하느님의 창조활동이 엿새 동안 계속되었고 일곱째 날 쉬셨다는 것은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

휴식을 취했던 당시 히브리인의 시간 구분법과 생활풍습에 맞춰 창조 이야기를 도식화한 결과다.

곧 성경 저자는 한 주간 단위로 이어지는 삶의 구조가 하느님의 창조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동시대

신앙인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한 것이다.

다른 한편, 성경 저자는 우주형성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개념과 용어를 사용하여 기술하려 하지 않았다.

사실 당시의 문화나 학문 수준에서는 그렇게 할 능력도 없었다.

성경 저자는 당대의 우주관과 일주일을 주기로 하는 생활양식을 염두에 두고 세상 만물이 하느님의 선의와

전능에서 생겨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기술하고 싶었던 것이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에는 우리의 과학지식에 어긋나는 것이 아직도 많다.

예를 들어 성경 저자는, 하느님이 혼돈의 물 한가운데 '궁창'이 생기게 하시어 물과 물 사이를 갈라놓으셨고(창세1,6)

해와 달을 별들보다 훨씬 큰 빛물체로 만드셨다고(창세1,16) 기술한다.

하지만 오늘날 누구나 알고 있듯이 해와 달은 우주에서 가장 큰 빛물체가 아니고,

물과 물 사이를 갈라놓는 궁창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지평선과 맞닿아 있으면서 우리의 머리 위로 높게 펼쳐져 있어 반구형으로 보이는

하늘 공간을 궁창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궁창이 하늘 위의 거대한 물을 떠받치고 있는 지붕이라고 믿었다.

 

성경에는 이와 비슷한 표현이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를 계시와 관련하여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사실 그런 표현이나 이야기는 하느님 계시의 내용과 목적에 직접 관련이 없는 부차적인 문제들을

당대의 사고나 사상에 입각하여 표현한 것이다.

셩경은 눈에 보이는 대로 자연현상을 묘사하고 당대에 통용되던 관념이나 상식에 맞춰 이야기를 전개한다.

만약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벗어나거나 전혀 다르게 이야기했다면,

메세지를 전하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역효과가 나타났을 것이다.

하느님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성경 저자를 이끌어 주셨다.

하느님은 무엇보다도 당신의 계시를 직접 받은 사람들, 곧 성경 저자들을 통해 말씀하고 활동하셨다.

따라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 그들의 지식과 경험에 상응하는 언어를 사용하셨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대로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묘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오류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진짜 오류는 우리의 감각에 비친 것을 객관적 사실 그대로라고 주장하는 데서 생겨난다

창세기 첫 장의 창조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성경 저자는 이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또는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를 가르쳐 주고자 한 것이 아니다.

그는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주 만물의 기원이 하느님께 있다는 신앙의 진리를

가르쳐 주고자 했다. 그럼에도 성경 저자의 의도나 목적과 다르게 본문을 들여다보고자 한다면 거기서

오류가 생겨나게 된다.

성경에는 오류가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말은 옳지만, 이것이 성경의 모든 표현이나 이야기 또는

말마디 하나하나가 객관적 사실 그대로이고 틀림없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렇게 확신했고 오늘날에도 그런 믿음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다.

하느님의 책은 그런 작품이 아니다.

성경은 특정한 사실을 두고 구체적인 목적 아래 전개되는 진지하고 일관된 진술로서 특별히 우리의 실존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이 가르쳐 주고자 하신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분이 말씀하지 않은 것을 듣고자 한다면,

이것은 성경과 관련하여 하느님께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잘못이라고 하겠다.

 

성바오로딸수도회 구약성경입문1 79~83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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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댁 (2018/04/14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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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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