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윤 수녀님 / 제22회 성경 해석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은총댁 2017/09/16 오후 05:52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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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윤 수녀님 성경 여행 스케치  

 

제22회 성경 해석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임마누엘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그러니까 하느님의 존재는 언제나 존재하시는데,

이 존재를 알아보지 못하니,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되어 계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 부제님의 강론을 통한 나눔 

 

(… ) 어떤 내용이었냐 하면요 예수님이 돌아가실 즈음에 기득권 층하고 예수님이 대립되는 

그래서 이 사람들이 끊임없이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고 가려고 하니까 하나라도 꼬투리를 잡

으려고 하는, 이제 꼬리표를 붙이려고 하는 거죠. 지난 주에 제가 그런 말씀드렸잖아요. 한 

사람을 무조건 죄인으로 몰아가려고 하는 굉장히 폭력적인 구조. 

 

그런데 이분이 어떤 분인지 빌라도 같은 경우는 '죄가 없다.' 이러게 하는데도 이쪽에서는 

이미 꼬리표를 달아버린 거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이 돌아가셔요. 돌아가시니까 이제 그들은

일이 다 끝났다 이제 안심을 하는 상태인데 이런 상황에서 누가 더 거세게 일어나냐 하면요 

그 겁 많고 맨날 도망만 다니고 못 배워 가지고 무시만 당했던 그이들이 너무나 강력한 힘으

로 일어나기 시작을 하는 거에요. 

 

오순절 사건이나 베드로가 설교하시는 이런 내용들을 보면 그 이전의 베드로가 아니죠. 예수

님의 부활의 힘이 그 아무것도 아니었던 제자들에게 강한 생명으로 새롭게 새로운 생명력으

로 축복으로 주어졌음을 볼 수 있는데, 아무튼 바리사이나 율법학자 이들이 그렇게 안심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회당에서 가르치고 성전에서 가르치고 이러니까 이제 고민이 

더 생기는 거죠. 

 

그래서 끊임없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는 치유하지 말고 가르치지 말라고 얘기를 하는데 이분

들은 "내가 당신들 말을 따라야 되겠느냐?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야 되겠느냐?" 그러면서 강

론을 하게 되는 그런 장면인데요. 부제님이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자세히 읽어보면 쫓

고 쫓기는 관계인데 여기에서 오히려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 거 같냐? 이렇게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누구겠습니까? 

 

오히려 제자들은 굉장히 담대하고 굉장하 아주 버젓하게 가르치는데 오히려 못 잡아가지고 

안달하면서 나름대로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히려 가해자였던 그들이 더 큰 두려움

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두려움의 속성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할 수 있게끔 하는 그런

질문을 던지시더라고요. 

 

제가 아, 바로 저거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굉장히 크게 저 같은 경우는 굉장히 많이 힘들게

다가오는 거는 두려움이거든요. 그런데 그 두려움을 넘어서는 것은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 밖

에 없다라고 하지만, 그 두려움 때문에 모든 것을 갖추려고 하지요. 그래서 공부도 더 할려고

하고 더 배우려고 하고 계속 노력하고 내가 좀 더 향상 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을 하는데, 

 

그게 몇 년의 노력 끝에 갖춰진다 하더라도 역시 두려움으로부터는 해방되지 못하는 이런 모

습을 볼 수가 있는데 결국 본인들이 아는 거 같애요. 내가 자유롭지 못한 것은 나의 욕심이라

든가 그러니까 그 기득권측에서는 뭘 두려워하느냐 하면은 이들이 뭔가 대중에게 절대적인 

힘을, 지지를 얻게 되는 걸 두려워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대중들한테 대대적인 지도자의 위상으로 올라갔던 분이 세례자 요한이시잖아요. 

그러니 세례자 요한도 암상당할 수밖에 없고 예수님도 그렇고 그다음에 제자들에게까지 이

러는 이유는 결국 조금이라도 그들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부분들을 내려놓게 될까

봐 그러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게 나쁜 생각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두려운 거거든요. 

 

결국 두려움이라는 건 자기가 죄인이라는 걸 아는 건데, 그걸 은닉하려고 하는 것이 더 큰 

죄를 낳는 것이고, 오히려 하느님 안에서 정말 자유로운 것은, 사람이 죄를 지을 수 있죠. 

지만 하느님 앞에서 그건 분명히 안 되는 거니까 죄를 용서받고 거기서부터 죄 값을 치루고 

이런 과정으로 가야 되는데 끊임없이 덮으려고 하면서 이 사람들을 죽여버리려고 할 때 오히

려 예수님보다 혹은 제자들보다 더 큰 두려움에 있었던 분들은 오히려 가진 분들이었다라는

그런 것들을 저도 여러 가지로 묵상을 할 수 있었고, 

 

아, 내가 두려움을 가질 때는 내 마음 안에서 정말 약자라서 그런가? 아니지 뭔가 인간적인 

욕심이 있다라는 거고, 그게 안 될까 봐. 그런데 그게 안 되도 괜찮으면 내가 자유롭거든요.

그런데 내가 불만스럽고 이건 좀 안 될 거 같은데 좀 그래도 이게 좋은 매무새는 아니지만 

나는 꼭 해야 될 거 같으니까 이때 두려움이 오는 게 아닐가?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제가 감명 깊데 들은 거라서 부제님께는 말씀드리고 이렇게 나누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교회에서는 그럼 성서 주석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표하고 있는지, 그래서 본문이

이야기하는 것 이외의 것은 상상이라든가, 공상이라든가 이런 것으로 하는 것에 대해서는 원

칙적으로는 그거는 성서가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이라서 알 수 없다. 이렇게 봐야 되고 또한 

어떤 경우는 이런 것도 있어요. 패미니즘의 시각에서 보면 성서는 말이 안 되는 게 너무 많거

든요. 

 

일단 구약에서 보면은 여성은 재산 목록이기 때문에 인간으로 인구 조사에서도 제외가 되죠. 

이유는 뭐냐하면 재산 목록에서도 아주 고대에서는 재산 목록 1위도 안 가요. 결혼 할 때 유

다인 총각들은 장인한테 가가지고 돈을 지불하고 데리고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가지고 오

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지불했다라는 것을 결혼 문서로 쓰게 돼 있어요. 고대 유다인

들의 관습이죠. 

 

이제 그런 것에서 그럼 그걸 보고 우리가 해석할 수 있는 건 뭐냐하면, 패미니스트들의 시각

에서 보면 이건 말이 안 된다. 성서에서 어떻게 하느님이 우리를 무시할 수 있냐? 그러니까 

본인들 생각을 주입시켜서 본문을 이해할려고 하는 것은 말씀 그대로가 외곡될 수가 있는 거

예요. 그래서 주석은 그 말씀 그대로를 주석을 하는 겁니다. 

 

다만 이해가 안 될 때는 역사 비판적인 방법을 가지고 가서 그 시대에는 이런 상황이었다. 그 

시대는 지금 우리 21세기처럼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지고 여성이 존중받고 이건 선진국에서

도 얼마 안 되거든요. 이런 상황들을 가지고 그 본문을 이해해야 된다. 여기서 역사 비평적인 

방법으로 설명을 해야지 이걸 그런 방법 다 없애버리고 패미니즘 시각에서 하느님을 각색해서 

'이런 일들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없다라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의 어떤 성서 해석의 역사에서는요 50년 주기가 중요합니다. 1993년에 최근에

회칙이 나왔는데 50년 전인 1943년에 또 회칙이 나오고요 또 50년 전인 1893년에   또 회칙

이 나옵니다. 즉 19세기 말에 소위 비평학이라는 게 생기고 소위 사람들이 학문하기를 시작을

하게 됐던 거거든요. 계몽주의나 과학혁명 이런 거를 지나면서. 그래서 19세기말에 유럽 전체

가 뭔가 이렇게 뭐라고 그럴까요? 패러다임이 바꾸게 되는 거죠.

 

이러면서 그러면 성경에 대해서도 새로운 어떤 접근을 가야되지 않겠느냐? 그런데 지나치게

앞서기는 것도 교회에서는 막을 필요가 있는 거고, 그렇다고 옛날 것을 전통이라고 해서, 전통

이라는 게 그냥 힘센 사람이 밀어붙인다고 해서 전통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전통을 살리면

서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또 지나친 어떤 해석에 대해서는 제제를 하는 이런 것인

데, 저희 교재 129페이지에 나와 있습니다. '섭리의 하느님'이라는 이런 회칙입니다.

 

* 섭리의 하느님 회칙(교황 레오 13세 반포)

  특별히 19세기 말 당시의 현안에 대하여 새로운 가능성의 긍정적인 측면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이에 대한 철저한 식별을 표방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요 때 소위 역사 비평학이 처음 등장하기 시작하죠. 이런 상황인데요. 이때 또 대영

제국이라든가, 스페인이라든가, 포르투칼이라든가 이런  큰 나라들이 식민지를 발굴하면서 

고고학이 굉장히 인기를 끌던 그런 시대라고 보시면 돼요. 그래서 어떤 문제가 요 때 나오게 

되냐하면, 이제 고고학이라는 게 뭐냐하면 

 

땅을 파가지고 보니까 돌에다가 뭔가 문헌을 새기는 거죠. 아니면 그다음에 있었던 건 뭐냐하

면 토기를 만드는데 우리 옛날에 진흙으로 하셨던 거 기억나실 거예요. 진흙으로 하면 송곳이

나 이런 걸로 거기다가 글을 쓰는 거죠. 토기에다가 문헌을 만드는 거예요. 이런 파편들이 나

오거나 아니면 파피루스나 양피지 이런 비슷한 것들이 나오면서 이런 문자를 해독 하는 거죠.

 

설형문자 혹은 상형문자라고 되어 있는 이런 문자들을 해독을 하면서 나오는 게 예를 들어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유프라테스 지역을 파보니까 당연이 이제 강 유역을 파는 겁니다. 왜냐

하면 문명은 다 강 유역에서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파 보니까 '한 처음에' 이러면서 

이렇게 문헌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 

 

'어, 이상하다.' 생각하죠. 내용이 창세기 1장하고 굉장히 비슷하더라. 이제 그러면서 문제들

이 등장하게 되고 또 다른 날은 이렇게 보니까, 아, 성서에서 나오는 계약 법전이라는 게 있거

든요. 이 계약 법전의 내용들과 또 굉장히 유사하더라. 예를 들어서 언젠가 설명한 적이 있는

동태복수법 같은 경우, 구약성경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법인데, 고대 근동의 법들이 대부분 이

것을 가지고 이렇게 비슷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 

 

또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보면은 의인이 있어서 그 의인만 빼고 나머지는 너무 문제가 있어서

신이 다 멸할려고 하고 그에게만 신이 계획을 알려줘서 그가 배를 건조하게 하고, 그래서 굉

장히 홍수가 내린 다음에는 거기에서 몇 개 쌍들을, 커플들을 데리고 와서 배 안에서 무사히

목숨을 유지하다가 그 다음에 이제 비가 다 끝났는 줄 알기 위해서는 새를 보내고, 어떤 산에

걸려있게 되잖아요. 배가. 

 

그런데 새를 날려 보내서 물이 빠졌는지도 알게 되고 이런 스토리라인은, 성서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 너무 유사한데 그런  이야기가 또 다른 토판에서 나오게 되는 거죠. 이러면서 소위

제가 저번 주에 양식 비평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이 양식 비평의 대가로서 헤르만 궁켈이라

는 분이 계세요. 이 분은 구약성경 연구사에서는 굉장한 업적을 남기신 분이라고 할 수 있는

데, 이 분이 이제 이런 논쟁을 벌이는 거예요. Bible - Babel 논쟁이라고.

 

그런데 Bible 은 독일말로 성서, 바이블이예요. 그래서 성서와 바빌로니아에서 출토되는 여

러 가지 고고학적 자료들이 굉장히 흡사하더라. 그러면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석을 할 수가

있느냐? 자, 그러면서 사람들이 양식 비평을 통해서 아, 이 시대에 굉장히 필을 받았던 것이

법조문하고 설화와 신화다. 그런데 이 신화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신화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서 특히 이런 큰 강 유역에서는요 비가 왔다하면은 다 범람을 하니까 홍수는 곧 세

상의 멸망하고도 자기네들은 연결됐다라고도 보는 거거든요. 그 정도의 어떤 상징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하는데, 그래서 에누마 엘리쉬 서사시나 길가메쉬 서사시 이런 유명한 서사시들

이 바로 이쪽에서 나온 문헌들이라고 할 수 있고, 이것과 굉장히 연결된 이런 내용들이 성서

에 들어와 있는 이유는 그 전승들이 이렇게 들어왔다라는 거죠. 

 

그래서 그런 그들이 굉장히 좋아하고 잘 알려진 어떤 이야기들을 하느님의 계시를 위해서 이

전승을 가져와서 재해석하게 되는 이런 과정입니다. 이런 부분이 좀 궁금하실 때는요 여러분

들이 에누마 엘리쉬 서사시나 길가메쉬 서사시 이런 거는 굉장히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런데 어떤 관계였는지는 이 Bible 논쟁을 통해서 당시의 어떤 그런 양식들이 굉장히 많이 

고 그게 들어왔다. 

 

사실 제가 앞 부분에서 쉽게 말씀드렸던 그런 성경의 속성에 대한 부분은 궁켈이라는 유명한 

학자의 학설, 그다음에 게라르트 폰라트라는 유명한 사람의 학설, 또 지난 주에 읽었던 계시

헌장에서의 많은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은 저의 어떤 독창적인 내용이라기보다는 그런 많은

학설들을 어떻게 하면 정리해서 말씀드릴 수 있을까? 그런 어떤 일환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들을 좀 알고 싶으시면 제가 책을 하나 가지고 왔는데 이 책도 저의 책인데요.

'쉽게 풀어 쓰는 구약성경' 1편이라는 시리즈 물로 나오고 있는 건데, 모세오경에 대한 부분입

니다. 지금 성경 여행 스케치는 스케치로 이렇게 하는 거고, 조금 세부적으로 학술적인 부분들

을 보고 싶다. 그런데 학술적인 이야기이기는 한데, 저의 문제는 이거였거든요. 

 

궁켈을 읽어보고, 폰히트를 읽어보고 그걸 해석한 다른 학자들의 내용을 읽어보고 도대체 정

리가 안 되는 거예요. 이게 너무 어렵기 때문에. 그리고 너무 복잡하게 이렇게 논지들을 전개

시켰기 때문에 너무 복잡해서, 이걸 그냥 학생들에게 이렇게 주기에는 제가 책임감이 있는 거

죠. 왜냐하면 복잡한 걸 교수도 아직 다 이해가 못 된 부분을 그냥 준다고 했을 때는 제자들은

당연히 이해를 못 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런 많은 것들을 어떻게 하면 정리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궁켈의 이런 이론, 폰히트의 이론, 마틴로트의 이론 구약성경 모세오경의 유명한 공헌

을 한 학자들의 내용들을, 그런 내용들을 쉽게 푸는 게 성경 여행 스케치라면, 이거는 있는 그

대로 요약해 놓은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저희 학사님들의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데 혹시 공부를 

좀 깊게 하고 싶다 이런 분들은 사실 이것도 깊은 내용이지만 굉장히 쉽게 풀어서 쓰려고 노력

을 했는데, 내용 자체는 쉽지 않아요. 워낙 복잡한 내용들을 정리한 거라서. 

 

그런데 여기에 보시면 그런 비벨 - 바벨 논쟁이라든가 특히 제가 공부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책이 모세오경이예요. 왜냐하면 너무나 고대 문헌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냥 마치 옛날 이야기

아렇게 듣는 것처럼 배워 온 게 모세오경인데 사실 이것이 문서화 되는 편집과 전승과 그런 

어떤 구전의 과정을 재구성하기가 고대 문헌일수록에 훨씬 더 어려울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옛날 이야기 같은 책일수록 과학적으로 접근하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학술적으로.

 

그래서 보통 모세오경을 제일 먼저 공부하시지만 사실 제가 볼 때 제일 어려운 책이 모세오경

이예요. 후대로 예언서나 아니면은 역사서도 그렇고 시서나 지혜서, 신약성경은 더 그렇고요.

이렇게 문헌이 정리되면서 소위 이제 글자를 아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이제 조금 더 체계적으

로 되게 되는데 모세오경은 거의 몇백 년 동안의 그런 어떤 역사들을 정리했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아모스고 예레미아고 예언서를 본다 하더라도 그 예언자들이 활동했던 시대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시대를 보면서는 이해가 쉽거든요. 모세오경은 모세의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사실 이 모세의 이야기가 문헌으로 되는 거는 유배나 유배 이후의 상황이기 때문에 그

엄청난 시대적인 간극을 추적해 내야지만 이해가 되기 때문에 모세오경이 좀 어렵습니다. 그

런데 19세기에 이런 논쟁들이 많이 생기는 거예요. 

 

* 그러면서 너무 앞서가는 사람은 성경의 어떤 위상 자체를 무시하는 상황까지 가는 거죠. 

  그런데 이거는 또 아니잖아요. 왜냐하면 하느님은 분명히 살아 계시고, 그래서 하느님의

  이름 야훼 혹은 임마누엘 그분에 대한 이름이건 별명이건 모두가 다 무엇과 연결되었냐

  하면 존재와 연결되어 있어요. 

 

야훼라는 말도 한국말로 어떻게 번역할까가 항상 논쟁이 많이 되어 있었는데, 아무튼 '존재하
는 것, 나는 있는 자 바로 그다.' 있음과 연결되어 있는 게 야훼라는 뜻이거든요. 영어의 be 동

사가 히브리 말의 하와 동사거든요. 이 하와 동사에서 파생됐으니까 영어의  be 동사에서 파

생됐다라고 보시면 되는 거예요. 야훼라는 말이요. 

 

* 임마누엘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그러니까 이 하느님의 존재는 언제나 존재하시는데,

  이 존재를 알아보지 못하니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되어서 계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그 당시에 유행하던 스토리도 들어와 보고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모세의 권위에 맞

어서 또 이렇게도 얘기도 해 보고, 뭐 이런 상황인데 이것까지도 무너지면은 이건 큰일나는

죠. 분명히 하느님은 인스프레이션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분명히 얘기하신 부분이 계신데,

"이것도 하나의 문학작품 같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생기게 되니까 이거는 어떻게 해서든

지 막아야 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 미묘한, 섬세한 줄타기를 저희가 아주 하느님 뜻을 가장 잘 따를 수 있고 무엇을 얘

기하시고자 이런 방법을 쓰셨는지를 알기 위해서 방법론이 도입이 돼야지 방법론이 커지게 되

면 "뭐야, 문학작품이잖아!" 이렇게 나올 수 있다는 거. 이거는 굉장히 큰 문제가 되는 거죠. 그

래서 1993년에 이러한 분위기 안에서 '섭리의 하느님' 이 책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당시의 어떠한 새로운 가능성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는 안 하세요. 그러한 

부분들도 도입하시지만 하지만 굉장히 철저한 식별을 해야되겠다는 입장을 강조하시는 거고,

그다음에 교회 안에서는 항상 50년이 희년이거든요. 모든 것을 해방되고, 자유로워지고, 기쁨

이 되는 구원의 해를 얘기합니다. 그래서 1893년에 '섭리의 하느님'이 나온 것에 대한 기념으

로 희년이 되는 1943년이죠. 교황 비오 12세께서 '성령의 영감'이라는 책을 또 반포하십니다. 

 

그런데 이 상황을 아시다시피 이태리도 그렇고, 2차 세계대전이 유럽을 완전히 강타하던 그런

시기예요.  그래서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의 영향이 되게 컸다라고 보시면 되고, 그러면

서도 특별히 이제 좀 더 과학적인 사고방식 이런 것들을 교황청에서도 인정을 조금 더 하시게 

되는 이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뭐냐?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저번 시간에 제가 읽어드린 것처럼 인간의 어떤

시대적인 상황들, 인간의 어떤 역사적이고 또 당시의 정치적이고 이런 부분들을 무시하지 안

은채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영감을 주셨다라는 이런 부분이 강조가 되고 있는데, 

 

* 성령의 영감 회칙 (교황 비오 12세 반포) : 특별이 이 회칙에서는 20세기에 들어와 급격히

  발전하게 된 시대 정신과 개방적 자세에 조응하고 있다. 성경 이외에 필요한 현대적 방법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활용하여 긍정적 결실을 얻어내도록 격려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이 회칙에 두드러지게 부각된 점은 성경 원문 곧 히브리어 본문과 그리스어 본문에 대한 긍

  정적 수용과 이에 대한 새로운 번역을 허용한 점이다. 또한 역사학이나 고고학 등의 학문을 

  성경연구에 활용할 것을 권장했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 하면 그전까지는요 교회가 굳건하게 지켜왔던 게 라틴어 성경이잖아요.

70인역에서 라틴어로 번역이 되면서 중세시대에는 라틴어 성서를 보게 되는 거니까. 그랬는데

이것도 제가 언젠가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저희들이 구약성경을 연구하게 될 때 또 신약성경을

연구하게 될 때, 연구는 워낙 오리지널한 보문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능하다면 그

원문에서 끌어내야 되는 게 연구입니다. 

 

그래서 대학에서 저희들이 원서들을 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한국말로 번역된 것은 번역의 어떤

한계가 분명히 있는 거거든요. 그리고 번역 안에서 번역자의 해석이 또 들어가기 때문에 뭐 라

너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아니면 슈와이어 마크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칸트가 무슨 얘기를 했

는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의 모국어로 쓴 그 책을 읽어야만 되는 상황인데 마찬기지로 성

서도 마찬가지죠. 

 

하느님께서 맨 처음에 구약성경을 히브리어와 약간의 아람어로 쓰게 하셨다면 저희가 70인역

이 그리스도교의 기본 정경이다. 이렇게 얘기는 했지만 70인역은 이 본서에 못 들어가니까 다

른 이방 공동체가 그리스 말을 쓰고 있기 때문에 가지고 간 것이지 번역서를 원문의 위상에 두

지는 않는 거죠. 그래서 제가 언젠가 구약성경 전공자들이 항상 가지고 다니는 책은 BHS라는

히브리 본문이었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어떤 분이 그런 질문을 하셨던 거 같애요. 

 

왜 70인 역이 그리스도교의 표준 본문이라고 하면서 왜 BHS 본문을 쓰냐? 이런 질문을 하신

적이 있는데 학술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 원문을 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저희가 구약성

경 전공자들은 히브리 본문에서 그 다음에 신약성경 전공자들은 70인 역과 신약성경 그리스 

말은 조금 달라요. 왜냐하면 70인 역은 기원전 작품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도 몇십 년 전 학국말하고 지금 말하고 동일하지 않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기원

전에 그리스 말과 그다음에 기원후 50년부터 쓰여지기 시작한 바오로나 아니면 복음서들은 약

간 차이기 있기 때문에 저희가 신약성경 전공자들도 이 70인역은 당연히 없죠. 왜냐하면 70인

역은 구약성경 번역이니까. 그래서 구약성경 전공자들이 쓰는 히브리 본문, 신약성경 전공자들

이 쓰는 그리스 본문이 다른데. 

 

이런 것들이 굉장히 강하게 들어 온 게 '성령의 영감'이라는 회칙에서부터라고 보시면 되겠습

니다. 그다음에 또 50년 뒤에, 그러니까 아까 1893년, 1943년, 1993년이죠. 50년 뒤에 제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 나온 회칙이 '교회 안의 성서 해석'이라는 회칙이었고, 이 책의 내용에 대

해서는 지난 주에 제가 좀 말씀드렸던 거 같애요. 

 

저희도 세미나를 이 책을 가지고 무지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저희 대학원에서도 하고 또 옆

에 그레고리안 대학이 있는데 그레고리안 대학에서도 새로 회칙이 나오는데 성서에 관련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아주 시험도 많이 보고 저한테도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런 책인데

몇 번 읽어보니까 "아, 이게 이런 말이구나." 그렇게 알 수 있었고 그때 회칙을 내신 분이 교황

님이 되신 베네딕토 16세이십니다. 그때 요셉 라칭거라고 아주 최고의 학자로 군림하셨던 분

이신데 그분이 아무튼 전체적인 것을 주관하셨다. 이런 분인데요. 

 

* 교회 안의 성서 해석 : 이 문헌 역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성경 해석에 대한 문제

  점이다. 성경 해석을 위한 고전적 방법 즉 역사 비평적 방법과 새로운 공시적 방법, 즉 수사

  학적 분석, 설화분석, 기호학 분석, 정경 비평 등을 다루고 가톨릭 교회가 성경 연구에 나아

  가야 할 근본적인 자세들을 개진하고 있다. 

 

즉, 이 책에서는 역사 비평적인 방법론을 소개하면서 이런 방법론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요 것

뿐만이 아니라 70년대 이후부터 나오기 시작했던 공시적 방법론들도 또한 쓸 수 있다. 하지만

몇 가지 것들을 쓸 수 없다. 왜냐하면 성서주석이 아니라 인간들의 해석과의 해석이 투영된, 

가미된 주석이기 때문에 주석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거는 안 되겠다라는 그런 내용으

로 되어 있습니다. 

 

자, 이래서 적어도 이 세 문헌 정도는 한 번 들어본 적이 있다. 이렇게 정도는 생각해 보시면은

좋을 거 같습니다. 책을 다 뗐거든요. 아까 잠깐 말씀드렸는데 사실 이렇게 얇은 책인데 저한테

는 제가 15년 이상 성경 연구하면서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내용들이 들어있는 사실 굉장히 소중

한 책입니다. 혹시라도 성서를 이해하는 데 조금 더 스케치가 됐다. 아우트라인이 생겼다라고 

느끼신다면 저는 하느님께 부족하지만 몫을 조금 한 것이기 때문에 위안이 될 수 있을 거 같습

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 책에는 안 다루었는데 구약성경에서 중요한 부분만 소개해 드리는 시간

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그리스도교의 성경 분류에서 말씀을 드렸는데, 신약 같은 경우는 

27권이고 쓰여진 시기 자체가 50년 안에 다 쓰여지고 이런 부분이라서 좀 그런데, 어떻게 보면

굉장히 중요한 시기죠. 구약보다 훨씬 중요한 시기인 건 분명해요. 

 

왜냐하면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 구약에서부터 얘기했던 바로 그분이다.'

요걸 얘기하기 위해서 구약이 들어오는 거고, 또 예수님이 당신에게 성경이 구약성경이었기

때문에 중요하다라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하지만 이해하기는 구약보다 조금 쉬우실 수 있을

거 같애요. 구약은 너무 방대하니까 이 46권을 다 보기가 어렵고 그래서 사실 신약성경 같은

경우는 주해 성서가 많이 나와 있죠. 

 

200주년 성서라든가 아니면 신약성경 한국에 계신 교수 신부님들이시죠. 학자분들께서 마르

코복음을 쭉 읽으면서 대충 주해를 다 달아놓으신 책들이 있어요. 그래서 신약은 그런대로 여

러분들이 주해서 등 좋은 책들을 보시면 아, 이게 무슨 내용이구나 조금 아시는데 구약은 답답

한 게 그런 책이 없으니까, 구약성경 학자들은 뭐하냐? 이러실 수 있는데, 

 

모세오경만 해도, 복음서는 마르코복음, 마태오복음 분량이 작게 되어 있는데 창세기 50장, 

탈출기 40장 이거 다 하면은 일생이 다 가요. 그러니까 창세기부터도 아직 지금 주해가 못 나

가고 있는 게 저희의 실정이예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일단 이제 그 그룹만이라도 이제는 보자.

이 정도 수준에 와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그리스도교 정경 분류에서는 네 가지로 나누게 되죠. 모세오경, 역사서, 

시서와 지혜서, 예언서 이렇게 나누시게 디는데 여기 각각의 그루 안에서 가장 중요시 여겨지

는 부분들만 이렇게 찝어서 드리는 걸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모세오경 들어가야 되는데요. 모세오경이라는 이 말의 명칭에 대해서 한 번 보겠는데, 

히브리 말로 토라라고 하잖아요. 셈족 언어의 특징은 자음이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말씀을 드
렸는데, 토라라는 말은 '야라'라는 히브리 말 동사에서 나왔어요. '야라'라는 말에서 파생된 명

사라고 할 수 있는데 '야라'는 어떤 동사냐 하면, 던지다, 쏘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이렇게 뭔가를 던지는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였거든요. 그런데 뭔가를 던지고

쏠 때는 뭐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합니까? 방향이 전제돼요. 방향없이 던질 수는 없다라는 거죠.

그래서 던지다, 쏘다라는 말을 '방향을 가리키다' 이런 말로 어휘가 학장되게 되면서 '야라'라

는 말은 단순히 던지는 행위에서 방향제시라는 이런 내용과 연결되게 됩니다. 그래서 야라에

서 파생된 토라는요 일종의 삶의 지침, 방향제시를 이야기합니다.

 

* '야라(던지다)'에서 파생된 단어인 '토라'는 삶의지침 즉 방향제시를 의미한다

 

우리가 모세오경이라고 하는 이 책들은 결국 어떤 책이냐? 유다인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주는 

삶의 지침 혹은 규범 그런 내용들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이 토라라는 말은 이런 의미

를 가지고 있었는데 70인 역에서 번역이 되면서는 뭐라고 번역이 되냐하면, 율법서라고 번역

이 됐어요. 한국말로. 히랍어는 '노모스'입니다. 노모스라는 말이 율법이라는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원래 그 말은 방향제시, 지침, 규범 이런 거였는데 이걸 70인 역에서 번역을 하고 또

70인 역을 가지고 신약성경 복음서 저자들이 이걸 가지고 온 거 아닙니까? 참조를 할 거 아닙

니까? 그래서 이 책을 부를 때 항상 율법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신약성경을 읽으실

때 모세의 율법 혹은 율법서 이건 다 어떤 책을 얘기하는 거냐? 구약성경의 토라, 모세오경을 

얘기하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예수님께서 이야기하실 때 혹은 복음서에서 보면은 "나를 가리켜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에서"

이런 말들이 나오거든요. 모세의 율법이라고 나오는 거는 모세오경에서 이야기하는 거가 당신

안에서 다 완성됐구나. 요걸 얘기하시는 거구나 이렇게 보시면 되겠는데, 왜 율법서라고 이름을

붙였냐하면 아시다시피 모세오경의 앞부분은 설화와 이런 이야기로 되어 있지만 탈출기 중반부

터 신명기까지 대부분의 책은 율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모세오경이라는 이 책이 이스라엘에게 언제부터 율법의, 그러니까 자기네들의 어떤

민법, 형법, 사법, 상법 등 모든 것의 역활을 하게 됐던 것이 에즈라 개혁 때부터였거든요. 에즈

라라는 사람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네 분 중에 한 분이신데, 이 분이 페르시아에서

돌아와서 귀환 공동체가 사는 데 법이 없다라는 거죠.

 

그래서 이쪽 페르시아의 황제가 뭐라고 얘기를 하냐 하면 "돌아간 니네들은 다 각각 고유한 법을

가질 수 있다. 페르시아의 법을 강요하지 않겠다. 그런데 니네들이 설정한 법이 곧 페르시아의

인준을 받은 법이니 레르시아의 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는 거죠.

 

그러니까 페르시아에서 실행하고 있는 법을 그대로 갖다놓지는 않지만 에즈라라는 사람도 사실

은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광징한 개혁 의미로 등장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페르시아 황

제가 보낸 사신이거든요. 왜냐하면 유다인이지만 페르시아의 승인을 받아서 오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죠.

 

그런데 그분이 오셔서 법을 제정하시게 되는데 그분이 이야기한 법이 그때 막 제정해 가지고 나

온 것이 아니라 이미 그들의 전통 안에서 이러이러한 것이 다 법으로 되어 있었던 그게 책으로

나와 있었던 거잖아요. 모세오경이라는 책으로 나와 있으니 이걸 법으로 쓰겠다라고 하면서 이

제 소위 오경이 그들의 법이 되는 거고, 이후로 유다 사회는 율법 위주의 사회가 돼 버리는 거죠.

 

자, 그래서 오경의 대부분이 지금 율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70인 역이나 그 이후에 헬레니즘

풍토 안에 있었던 그들은 '이 책을 지침이라는 말 대신에 율법서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고,

제가 말씀을 드렸는지 모르겠는데 소위 유다인들의 율법이 전체 몇 개가 있다고 얘기하냐 하면,

613개 조항이죠. 여기서 재미있는 게 있죠. 금령과 명령이 구분되어 있잖아요. 금령이 365개이

고 그냥 명령은 248개입니다.

 

 

지금 유다인들의 율법이라는 게 613조항으로 되어 있는데 ..하지 마십시오. ..하지 마라. 이거는

365조항으로 되어 있고요. ..해야 된다. ..해라. 이거는 248조항으로 되어 있는데, 365는 다 아

시죠? 1년 365일 그런 거를 상징하고 있고, 248은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인간 신체 부위죠. 뼈마

디가 248개로 되어 있다고 그래서 이렇게 지금 만들어 있는데 이 613가지의 대부분이 다 오경의

내용에서 가져왔어요.

 

 

그러니까 주로 어디에 많이 나오겠습니까?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요기에서 집중적으

로 들어가 있는 거죠. 그런데 몇 가지는 창세기나 탈출기 앞부분에서도 몇 가지 나와요. 그런데

두세 가지 뭐 이 정도 조목 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율법이 굉장히 중요하고 이런 모

습은 신약성경에도 굉장히 잘 반영되어 있는데 그게 몽땅 오경에 나오니까 이 사람들이 이 책을

부를 때 율법서다 이렇게 부르게 되는 겁니다.

 

 

나머지 부분은 다음 시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모세오경에서 꼭 이해하셔야 되는 부분

을 설명드리고 그다음에 역사서 부분으로 가서 설명드리고 이렇게 하겠습니다. 아까 제가 처음

시각할 때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드렸었는데요. 보통 많은 걸 가지고 있는 사람도 왜 더 포악

해지냐하면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그 한 가지 때문에 사람이 포악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역시 에스테르기 원고에서 발췌를 하겠는데 하만이라는 사람은 아무튼 최고의 장군이죠.

아무튼 왕 다음에 일인자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모르드카이한테

화를 내냐하면, 인사를 안 했다라는 거거든요. 내가 이런 사람인데 말이야. 그런데 모르드카이

너는 이방인인데 내가 왜 너한테 인사를 하냐? 뭐 이런 상황입니다. 그거에 대해서 굉장히 분

를 하는 그런 상황 안에서 묵항한 부분을 좀 읽어볼께요.  

 

​생손앓이 中

인간은 모든 것을 갖고자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완벽에 이른 적이 없다. 비극은 인간이 그 자

명한 진리에 도무지 잘 적응하지 못하는 데에서 발생한다. 완벽을 향한 통제되지 않은 욕심과 도

달하지 못할 목표에 대한 미련은 자신을 괴롭히는 가장 강력한 악이 되어 결국 인생을 파손과 절

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하니 말이다.

 

모든 것을 가졌어도 자신이 못 가진 한 가지 때문에 불행하다고 여기는 덫이야말로 어쩌면 우리

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인생의 함정일지도 모른겠다. 에스테르기 5ㅡ6장에서보면 하만도 모든 것

을 가졌지만 자신을 무시하는 모르드카이 때문에 괴로워하고 이러한 과욕과 질투, 언제나 최고

가 되려고 하는 망상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살육의 원인이 됨을 보여준다.

 

바리사이파와 기득권층들도 왜 예수님을 그렇게 제대로 보지 못하고 죽이려고 하는지? 그 이유

는 그거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부분이, 아성이 무너질까 봐. 자기가 봤을 때 이게 더군다나 굉장

히 진실하다, 진품이다, 좋은 거다 이러면 힘이 있을 때 빨리 없애버려야 되는 이런 상황인데, 사

실은 그런 것이 사실 더 두려움을 가지고 혈안이 되어 사람이 미쳐가는 것은 오히려 그런 사람들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것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김혜윤 수녀님 성경여행 스케치 다시보기

 

http://web.pbc.co.kr/CMS/tv/program/pro_sub.php?src=%2FCMS%2Ftv%2Fprogram%2Fview_list.php%3Fprogram_fid%3D3778%26menu_fid%3D3779&program_fid=3778&menu_fid=3779&cid=&yyyy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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